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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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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관 근대 대구태권도의 역사 대구에 처음 청도관의 뿌리를 내린 사람은 이종호 관장이다. 그는 51년 해군에 입대하여 함대사령부 산하 63함에 근무하면서 박기웅 사범을 만난다. 박기웅 사범은 창무관 지관을 민간인 상대로 태권도를 보급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제대할 때까지2단의 단증을 획득하였다. 제대 후 서울견지동 청도관 본관에 입문한 이종호 관장은 일 년 남짓 서울에 있는 동안 청도관 2대 관장 손덕성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또한 대구·경북의 청도관 기틀을 마련하는데 56년 대구에 청도관 경북본관을 개설한 후 청도관 개관기념 키네마(한일극장)에서 청도관 중앙 본관 및 경북 본관 합동 연무시범을 개최했다. 그리고 50년대 말 ~ 60년대로(사회사업대, 현 대구대) 한성상고, 대구상고, 하양 무학중 등 학교팀 창단에 앞장서 세력을 확장한다..
근대태권도형성(1944~1950) 3.1 해방 전후 태권도 발생(1944~1950) 1910년 8월29일 한일 합방조약이 공포됨과 동시에, 일제는 서울남산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은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이래 27대 519년 만에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일본총독은 육해공군과 교육, 철도, 경제, 토지 등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심지어 지방에서 유생들이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던 서당마저 민족의식을 깨우친다며 통제하였다. 이때 우리민족의 고유무술인 태껸이나 수박같은 전통무술은 점차 소멸해갔고, 자연스레 일본 무도영향을 받아 가라테, 유도, 검도의 유입에 길들어져 갔다고 사료된다. 광복을 전후해서 일본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귀국하였고 이들이 가라테의 보급을 서울중심으로 청도관, 조선 연무관, 무덕관, YMCA권법부, 송무관, 등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