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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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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무관 YMCA서울 중앙 기독교 청년회 초대 경북·대구 태권도 관장에 오른 이동주 관장(75년작고)과 중앙관장을 지낸 이남석 관장은 윤병인(초대 창무관 중앙관장 6.25전쟁당시 납북 추측)선생을 도와 46년 9월 서울 중앙기독교 청년회 체육부에 태권도부를 창설한다. 곧 체신부와 경동중·고, 성균관대 등에 태권도부를 잇다라 설립을 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지만, 6·25가 발발. 사범, 수련생모두가 흩어진다. 소설같은 이야기지만 이동주관장은 인민군에 잡혀 강제징집 또는 부역에 종사하다 연합군에 의해 북한군 포로로 분류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지만 경비병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주에 성공하였다. 이동주 관장은 낮선 대구로 와서 삶에 익숙해지자, 대구 중구 동인동에 있던 연탄공장을 빌려 창무관 대구·경북본관을 설립을 하게 되었다. 그 ..
근대태권도형성(1944~1950) 3.1 해방 전후 태권도 발생(1944~1950) 1910년 8월29일 한일 합방조약이 공포됨과 동시에, 일제는 서울남산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은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이래 27대 519년 만에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일본총독은 육해공군과 교육, 철도, 경제, 토지 등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심지어 지방에서 유생들이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던 서당마저 민족의식을 깨우친다며 통제하였다. 이때 우리민족의 고유무술인 태껸이나 수박같은 전통무술은 점차 소멸해갔고, 자연스레 일본 무도영향을 받아 가라테, 유도, 검도의 유입에 길들어져 갔다고 사료된다. 광복을 전후해서 일본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귀국하였고 이들이 가라테의 보급을 서울중심으로 청도관, 조선 연무관, 무덕관, YMCA권법부, 송무관, 등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