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라테

(2)
한국전쟁 이후 태권도 발달(1950~1978) 50년대에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기점으로 초기 5대관들에게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행방불명 또는 일본으로 밀항하는 등 혼란기가 일어나고 각 관들의 제자들이 뜻이 서로 맞지 않아 새로운 관이 설립된다. 오도관 무도인이자 청도관 출신인 ‘최홍희’는 국군을 창설한 한사람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었으며, 청도관 설립자인 이원국이 일본으로 도피하면서 청도관 명예 관장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청도관 출신들을 군에 많이 입대시켰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군대에서 오도관을 창설하였다. 1953년 9월 ‘익크부대1)’에 당수도 2단 남태희중위2)와 당수도 1급인 한차교 하사를 훈련소 사범으로 임명하여 태권도를 보급, 자신이 사단장으로 있는 국군29사단을 단시일에 강군으로 만들고, 54년 6월 제주도를 떠나..
근대태권도형성(1944~1950) 3.1 해방 전후 태권도 발생(1944~1950) 1910년 8월29일 한일 합방조약이 공포됨과 동시에, 일제는 서울남산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은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이래 27대 519년 만에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일본총독은 육해공군과 교육, 철도, 경제, 토지 등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심지어 지방에서 유생들이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던 서당마저 민족의식을 깨우친다며 통제하였다. 이때 우리민족의 고유무술인 태껸이나 수박같은 전통무술은 점차 소멸해갔고, 자연스레 일본 무도영향을 받아 가라테, 유도, 검도의 유입에 길들어져 갔다고 사료된다. 광복을 전후해서 일본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귀국하였고 이들이 가라테의 보급을 서울중심으로 청도관, 조선 연무관, 무덕관, YMCA권법부, 송무관, 등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