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경기 겨루기의 역사
경기 겨루기는 1962년 대한체육회에서 대한 태수도협회라는 경기단체로 가입되면서 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1963년 10월 24일에는 전국 체육대회에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64년 9월 3일에는 제45회 전국체전에 태수도가 정식종목으로 승인되었다. 명실 공히 스포츠로서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1965년 8월 5일에는 대한태수도협회가 대한태권도협회로 개명되었고, 1973년 5월 25일 제1회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이어서 5월 30일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이 결성되었으며, 1975년 10월 5일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이 국제경기연맹의 가입에 성공하고, 1980년 7월 17일 세계태권도연맹은 제83차 IOC 총회에서 정식 승인 단체가 되었다. 1981년 7월 24일에는 제1회 월드게임에 16개 종목 중 하나로 인정되었으며, 1986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시범종목으로 선정되어 남자 35개국 124명, 여자 16개국 68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에도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등에서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였고 세계적인 스포츠로서의 그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또한 제114차 멕시코시티 IOC 총회에서 2008년 북경 올림픽, 제117차 싱가포르 IOC 총회에서 태권도 경기 겨루기를 2012년 런던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경기 겨루기의 성장과 변화로 말미암아 각국 태권도 선수의 기량을 평준화되기에 이르렀다.
경기 겨루기는 상대와 내가 1대 1의 대적적 상황에서 힘과 기술을 겨루는 격투 종목으로서, 서양스포츠의 잘 발달된 경기방식을 수용하면서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정착하였다. 이와 같이 격투기 형식에서 스포츠 경기로 변형된 종목에는 유도, 레슬링, 복싱 등이 있으며, 중국의 전통무술인 우슈 역시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경기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경기 겨루기는 대인 격투스포츠이다. 2인이 경쟁의 주체가 되어 서로 간의 기술적 공방을 통해 승패를 겨루는 것이다. 공평한 조건하에서 경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체적 조건을 고려하여 체급을 나누어 경기에 임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무슬과 달리 경기 겨루기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스포츠맨십에 입각하여 상대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선의의 경쟁자로서 인식하고 자신이 가진 기술을 발휘하기 위한 파트너로 파악한다. 일반적으로 경기는 스포츠의 한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개인이나 단체가 일정한 규칙 아래 기술을 발휘하여 승패를 가리는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기 겨루기는 "합리적이고 조직화된 규칙에 의해 고도의 전략적 지식체계를 통해 개인의 기술과 전술을 겨루는 경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태권도 경기 겨루기는 낮은 흥미도, 판정의 불공정성, 저조한 미디어 노출 효과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며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의 퇴출 가능성까지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세계태권도연맹은 2004년 11월 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약 200쪽에 달하는 개혁 보고서를 완성,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개혁위원회에서 내놓은 경기 방식의 주요 개선안은
첫째, 연장전에서 우세승으로 승자를 가리는 방식에서 탈피, 한방의 유효타로 승자를 결정하는 서든데스 도입
둘째, 몸통 유효타 1점, 안면 2점, 다운 시 추가 1점으로 분류되어 있는 채점방식을 변경하고 주먹기술을 인정하는 등 역전의 묘미를 유도할 수 있는 채점방식의 세분화
셋째, 3분 3회전에서 5분 2회전으로 하는 남자부 경기시간 변경
넷째, 전자호구 도입으로 판정시비를 방지
다섯째, 컬러 도복을 도입
여섯째, 마케팅 및 언롱 홍보를 강화
등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컬러 도복의 도입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선안이 적용되었다. 도복의 경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최근 발차기에 용의 한 딱 붙는 형태의 늘어나는 도복 바지가 하나의 공인 도복으로 인정되었다. 이외에도 비키니 형태의 짧은 도복 등 시도는 좋으나 결과적으로 태권도의 본 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재되고 있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