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사설

연무관

월간김사범 2021. 12. 15. 22:01

연무관

연무관 창설자인 김도기(160cm정도의 키에 60kg에 못 미치는 체구를 가졌지만, 격파의 달인이라 불리어지고 절에서 스님 으로부터 무술을 익혔다고 추측. 연무관 본 관장을 맡으면서 옥포 용연사를 자주방문) 관장(72년 작고)은 태권도 당수도의 격파부분의 제 1인자로 뽑혔었다. 고향이 평양인 그는 6·25전쟁으로 대구 중구 서야동에 연무관을 하대영 관장(경남 창녕)과 설립했다.

 

김도기 관장은 대구·경북 중심으로 활동한 반면, 하대영 관장은 부산·경남 태권도 보급에 중심이었다.

 

연무관 특징은 무술대회를 개최. 시범을 많이 활성화 시켰는데 그 당시 놀이나 오락문화가 없어서인지 연무시범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었다. 주로 학교운동장이나 극장무대가 활동 장소였는데 1959년도에는 연무관본관에 수련생 1천명이 등록되는 등 전성기를 누렸었다.

 

65년 대구 종합운동장(·시민운동장)에서 전국규모의 무술대회를 열어 아무 보조장비없이 시합을 개최, 비판도 받았지만 당시 재정이 어려웠던 시기에 전국규모의 대회를 개최했었다는게 큰 이슈었다.

 

김도기 관장의 뒤를 이어 대구연무관을 발전시킨 사람은 장한걸 관장이다. 하지만 스승인 김도기 관장은 김구봉(대구유도원로인)의 아들 김동성(향토유도원로 금구봉의 아들이며, 케녀에 거주)에게 연무관을 물려주지만 유도를 익힌 사람이 태권도장을 경영한다는 사실에 연무관내부에서 반발이 심했었다. 자연스럽게 장한걸관장(전 대구 태권도협회 부회장)이 운영하는 연무관 동부도장을 시점으로 본관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연무관 내분으로 인해 71년 대한 태권도협회에 정식 등록을 하지 못해서 연무관 대신 송무관이름을 빌어 승단심사를 보게 되었다.

 

송무도장은(연무관동부도장) 단일도장으로 우수선수를 많이 배출하였는데 이정희, 박동수, 강환울, 최성호 등이 전국대회에 활약을 하였었고 박정호가 국가대표로 3·4회 세계선수권대회에 2연패를 하였다.

 

연무관 전통을 잇는 수제자 중에 임정호관장1)이 대를 잇고 있으며 그는 경북 태권도 선수권 핀급에서 우승(66.11)에 이어 67년 전국체전 핀급우승. 69년 밴텀급우승. 70년 라이트급 우승. 73년 웰터급우승에 이어 경북 최고 선수상 (74)을 수상해서 문경 군청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특혜를 받았다.

문경지역에 태권도 보급에 큰 공로를 하게 되는데 임창배를 기점으로(국가대표, 1회 국제대학 태권도 선수권대회(8312)) 김중기, 채종국(점촌도장관장), 최종일, 김운경, 정종국 등 우수선수를 많이 배출하게 된다.

연무관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대구·경북지역의 경기태권도의 보급,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세력 확장을 하였다.

 

1)6611월 대구 종합운동장(, 대구 시민운동장·야구장)에서 개최된 경북태권도 선수권대회 핀급 우승.